[뉴스레터9호][행사후기]2015 맑스코뮤날레 『문화/과학』 섹션 참관기

2015 맑스코뮤날레 『문화/과학』 섹션 참관기

-강정석(『문화/과학』 편집위원, 지식순환협동조합 사무국장)

올해 맑스코뮤날레의 주제는이었다. 맑스주의가 그 동안 잘 다루지 않았던 ‘일상의 변혁’을 논한다는 것은, 자본주의적 소비문화에 젖은 삶이 아닌 ‘다른’ 삶, 대안적 삶의 가능성을 모색해보려는 중요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사회의 변혁을 위해서는 개인의 삶 또한 변혁되어야 하고, 그러한 개인의 삶의 변혁을 위해 ‘일상’적 삶에 주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그 동안의 맑스주의적 논의에서는 일상의 영역을 잘 포착하지 못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맑스코뮤날레에서는 정치경제적 차원의 거시적 담론과 일상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다양한 미시적 삶들이 마주치는 지점들에 대한 치열한 토론의 장이 펼쳐진 흥미로운 장이었다.

 

이번 맑스코뮤날레에서 『문화/과학』 편집위원회는 대담하게 ‘대안 사회를 상상하기’라는 주제의 섹션을 마련하였다. 물론, 현재의 사회는 매우 암울하며 어떤 전망을 상상하는 것도 힘들 정도이다. 그러나 또한 대안사회에 대한 전망이 없다면 우리는 현재의 패배주의에 젖어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안사회를 상상하는 것은 ‘공상’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현재의 지평에서 다양한 문제들을 직시하고 비판함으로써 새로운 전망을 찾고자 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 아래, 문화과학 섹션의 전체 사회는 이동연 편집인이 맡아 진행하였으며, 김영선 편집위원의 「장시간 노동이라는 돼지우리에서 대안 모색하기」, 강정석 편집위원의 「교육 불가능의 시대에서 대안을 모색하기」, 이원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의 「문화행동은 지금,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이렇게 세 개의 발표가 이어졌다. 이후 각각 김성일 편집위원, 손희정 편집위원, 최현정 일상예술창작센터 사무국장이 각각 주제에 대한 토론자로 참여하였으며, 이후 청중들과의 토론을 통해 마무리되었다.

발표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우선 김영선 편집위원은 발표를 통해 장시간 노동환경을 세밀하게 분석하며 장시간 노동의 사회적 효과와 원인,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적 노동시간체제의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세 명의 일을 한 명에게 몰아버리는 기형적 노동 구조와 근면함을 성공의 최고 덕목으로 만들어버리는 신화, 저임금 노동의 문제, 그리고 유명무실한 제도정책 등이 장시간 노동의 원인이라면, 이로 인한 효과는 건강 악화, 노예화된 인간화, 사회 및 가족관계의 단절, 상품 집약적 여가에 함몰되는 소비문화, 세대와 계층 간의 갈등의 심화 등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그가 제안하는 대안적 노동시간체제는 바로 ‘시간의 민주화’이다. 노동 시간을 줄이고, 근면이라는 신화를 걷어버리며 생활임금 등의 임금구조 개선을 통해 자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강정석 편집위원은 현재의 ‘교육 불가능의 시대’에서 우리는 어떤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였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르러 더 이상 교육은 자연상태의 인간을 ‘사회화’시키거나 인간의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회적 배제를 광범위하게 확산시키는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와, 자연과 마주하는 주체적인 관점과 태도를 갖추며 앞으로의 삶을 용기 있게 살아가기 위한 다양한 지식과 경험의 폭을 넓히는 교육의 가능성은 여전히 매우 중요한 가치로 남아 있다. 따라서,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그런 교육의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한 ‘시간’을 마련하는 것과 그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양질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이다. 즉 시간과 프로그램을 갖춘 ‘환경’을 마련하는 것, 결국 다시 교실의 문제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것이 어쩌면 교육 불가능의 시대에서 상상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원재 소장은 현재의 예술행동의 맥락들을 짚어내며 ‘일상을 재구성’하는 예술행동의 다양한 시도들을 강조하였다. 자본주의적 일상은 주로 ‘공급된 삶’의 한계 속에서 이루어지며, 이러한 공급형 삶의 구조는 개인의 삶을 분절화하고 소멸시킨다. 주거, 음식, 의류, 연애, 교육, 여가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공급형 삶의 구조를 벗어던지고 자기 실천적인 삶의 양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문화행동이 가진 고유의 목표이다. 이는 결국 앞서 김영선·강정석 편집위원이 강조했듯이 자율시간을 마련하고 그러한 삶을 더 ‘잘’ 살아가기 위한 문화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이렇게 세 개의 발표를 관통하는 열쇠말은 바로 ‘시간’이었다. 장시간 노동의 비정상적 노동환경을 ‘정상화’하는 것, 그리고 문제풀이식 교육이 아닌 삶을 위한 교육적 실험을 모색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을 마련하는 것, 그러한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행동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 우리가 현실의 지평을 바탕으로 대안사회를 상상할 때 매우 중요한 것은, 김영선 편집위원이 강조한 것처럼 시간을 민주화하는 것이며, 그렇게 확보된 시간을 어떻게 ‘잘’ 보낼 수 있을 것인지를 섬세하게 기획하는 것이다. 삶을 착취하며 문자 그대로 노동자를 ‘암’ 걸리게 만들어버리는 장시간 노동착취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어떻게 하면 스스로를 돌아보고 사유하며 주체적 삶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시간을 자본주의적 소비문화적인 방식이 아닌 대안적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획은 무엇인가?

물론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섣부르게 대답할 수 없다. 우리들 스스로 ‘대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상이 각각 다를뿐더러, 현재의 삶의 조건에서 그러한 대안을 실천하는 것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들을 공유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결코 헛된 것만은 아니다. 예술행동의 다양한 사례들로부터 알 수 있듯이 이미 가능성은 지역 속에, 그리고 ‘일상’ 속에 세세하게 젖어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다양한 가능성을 포착하는 것, 그리고 그 가능성의 싹을 틔울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을 기획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대안사회’를 단지 ‘공상’의 차원이 아니라 ‘실천’의 영역으로 풀어낼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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