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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187; 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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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뉴스레터11호][신간안내] 『문화/과학』 83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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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7 Oct 2015 07:00:37 +0000</pubDate>
		<dc:creator>운영자</dc:creator>
				<category><![CDATA[글]]></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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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83호를 발간하며 만약 중고등 교육과정 교과목 중 ‘페미니즘’ 혹은 ‘젠더학’ 같은 게 생긴다면, 그 교과서에 2015년 여름은 분명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록될 게다. 그 교과서가 미국 것이라면, 해당 지면에는 환호하는 시민들의 모습과 함께 ‘동성결혼 합법화’라는 전기적(轉機的) 사건이 서술되겠지만, ‘헬조선’이라는 별칭을 가진 &#8230; <a href="http://cultural.jinbo.net/?p=1693">계속 읽기 <span class="meta-nav">&#8594;</span></a>]]></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83호를 발간하며</p>
<p><a href="http://cultural.jinbo.net/blog/wp-content/uploads/2015/10/83호_앞표지1.jpg"><img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1723" title="77í¸03" src="http://cultural.jinbo.net/blog/wp-content/uploads/2015/10/83호_앞표지1.jpg" alt="" width="1768" height="2632" /></a></p>
<p>만약 중고등 교육과정 교과목 중 ‘페미니즘’ 혹은 ‘젠더학’ 같은 게 생긴다면, 그 교과서에 2015년 여름은 분명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록될 게다. 그 교과서가 미국 것이라면, 해당 지면에는 환호하는 시민들의 모습과 함께 ‘동성결혼 합법화’라는 전기적(轉機的) 사건이 서술되겠지만, ‘헬조선’이라는 별칭을 가진 남한의 것이라면 사정은 매우 다르다. 그 역사는 ‘여성혐오의 시대’ 혹은 ‘역풍(backlash)의 시대’라는 장 제목 하에 유명 연예인과 칼럼니스트의 여성혐오 발언, 온라인공간에서 촉발된 여성혐오적 신조어들, 퀴어퍼레이드에 반대한다며 도로에 드러눕는 일부 개신교도들, 줄이어 고발되는 남성 진보인사들의 데이트폭력, 메르스갤러리와 미러링(mirroring),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 여성을 성기로 환유하는 랩 가사가 특정 음악의 관행으로 일컬어지는 사태, 성추행을 거듭해도 처벌되지 않는 교수와 정치인들, OECD 가입국가 중 수위를 기록한다는 여성대상 강력범죄율 같은 세목들로 꼼꼼하게 채워질 것이다.</p>
<p>물론 가까운 시일 내에 그런 과목들이 생길 것 같지 않고, ‘국사’ 교과서에서라면 더더욱 이런 일들이 ‘(대문자)역사 서술’의 대상으로 언급될 리 없으니 이 모든 생각은 그저 ‘망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페미니즘이 골몰하는 주제들이 한갓 ‘추문’이나 ‘스캔들’로 치부돼온 유구한 역사를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스트들이 기획‧참여한 각종 매체들의 ‘여성혐오’ 혹은 ‘페미니즘’ 특집 및 단행본들이 이례적으로 쏟아진 최근의 현상은 어쩌면 ‘절규’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이 사태를 제대로 의미화하지 않을 것이기에, 누군가는 ‘지금-여기’를 기록하여 인식과 성찰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긴급함과 절박함이야말로 이들로 하여금 그토록 열렬히 말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p>
<p>그러므로 ‘다시’ 페미니즘을 생각하자는 제안은 지루한 성 대결의 반복이나, 모든 사태를 생물학적 성(性)의 문제로 설명하는 것쯤으로 간주돼서는 곤란하다. 아니, 페미니즘은 그런 것과 무관하다. 페미니즘은 언제나 누군가에게는 이념이자 운동, 혹은 존재방식 그 자체를 결정‧지탱하는 인식론이었으며, 급격히 보수화하고 있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폐색과 퇴행을 막기 위한 유력한 가능성이자 대안적 패러다임이기도 하다. 『문화과학』 83호의 특집을 ‘페미니즘 2.0’으로 정한 것도, 그 ‘탐험’ 혹은 ‘모험’에 가까운 성찰과 실천에 기꺼이 동참하고 싶기 때문이다.</p>
<p>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고,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페미니즘’ 자체가 혐오나 희화화의 대상으로 전락했을 만큼 극도로 폐색된 담론지형 내에서 우리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예컨대, 우리가 상상한 ‘페미니즘 2.0’의 언어는 이런 것이었다. 눈앞의 혐오와 폭력에 붙들려 ‘계몽’과 ‘(반)비판’만으로 에너지를 소진하거나 퇴행하지 않을 것, 페미니즘을 부분운동으로 국한‧고립시키는 기왕의 오해와 거리를 두면서 페미니즘 논의를 일신 혹은 (재)활성화시킬 것, 페미니즘의 역사성과 정치적 가능성을 급진화할 것, 페미니즘을 둘러싼 국내 안팎의 현상과 담론, 이론과 실천들을 두루 다룰 것, 현재 페미니즘 지형에 상관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여러 흐름의 참여적 가능성 및 그 조건으로서의 미디어환경을 고민할 것. 요컨대, 우리는 ‘페미니즘 2.0’이 기존 페미니즘의 문제의식과 성과를 유지‧계승하면서도, 새로운 흐름을 일으킬 수 있는 ‘확장과 전환, 참여와 가능성’의 이름이기를 바랐다. 물론, 페미니즘의 이런 노력은 한 번도 멈춘 적 없기에, ‘페미니즘 2.0’은 기실 ‘페미니즘 54978.0’쯤으로 읽혀도 무방하다.</p>
<p>그런데 ‘페미니즘 2.0’을 이렇게나 많은 조건과 단서들을 충족시켜야만 하는 ‘완전체’로 상상한다면, 발화할 용기는 좀처럼 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문화이론전문지’라는 『문화과학』의 확고한 정체성도 때로는 방해가 된다. 이번에는 아직 이론화되지 않은, 혹은 이론화를 거부하는 페미니즘의 역동(dynamics)을 포착하는 게 더 시급했다. ‘페미니즘 2.0’ 기획이 완전무결한 이론에의 강박을 버리고 ‘질문’과 ‘감행’의 언어이기를 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p>
<p>그리하여 『문화과학』 83호 ‘페미니즘 2.0’ 특집은 페미니즘의 여러 부면을 고유의 관점에 따라 조망‧분석한 네 편의 글들로 구성됐다. 이 기획의 총론으로 읽혀도 좋을 손희정의 ｢페미니즘 리부트―한국영화를 통해 보는 포스트-페미니즘, 그리고 그 이후｣는 2015년을 ‘페미니즘이 리부트(reboot)된 획시기적 시간’으로 과감하게 규정하며, 기존 페미니즘과 ‘포스트-페미니즘’ 간의 접속과 단절의 문제를 다룬다. 이 글에서 ‘포스트-페미니즘’이란, ‘페미니즘은 이미 성취됐다’라는 성급한 진단과 함께 신자유주의에 투항함으로써 오히려 반페미니즘적 효과를 촉발하는 일련의 경향을 가리키는데, 그것이 기존 페미니즘으로부터의 수혜를 통해서 가능했다는 점은 논자에게 ‘가능성’이자 ‘한계’로 읽힌 듯하다. 여성캐릭터의 범람과 소멸, 소비자로서의 ‘여성관객’이 지니는 정치적 가능성과 신자유주의적 여성성 등 이 글에서 제시하는 1990~2010년대 한국영화(사)의 주요 화두들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독해된 문제적 징후들이다. 무엇보다 오늘날 페미니즘이 “신자유주의적 소외와 파편화 과정”에 동참하게 된다는 우려 섞인 통찰은 이 글에서 가장 섬세한 음미를 요청하는 대목이다.</p>
<p>근현대 동아시아 젠더(사) 연구자인 류진희의 ｢‘무기 없는 민족’의 여성이라는 거울―해방 전후 탈/식민 남성성과 여성혐오를 단서로 하여｣는 ‘여성혐오와 군사주의’라는 주제의 역사성을 추적한다. ‘여자도 군대 가라’라는 식의 언사나, 최근 부상하는 남성성이 군사독재시절의 그것이라는 점은 애당초 (탈)식민과 건국의 과정에서 여성이 타자화돼온 역사와 긴밀하게 관련된다는 것이 이 글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이다. ‘문약(文弱)’과 ‘문청(文靑)’은 식민과 냉전의 동아시아적 전개과정에서 (탈)식민 남성 스스로 제출한 트라우마적 자기표상이었다는 통찰과, ‘모던 걸’ 혹은 ‘국치랑(國恥娘)’이라는 여성혐오적 호명을 통해 여성을 ‘식민화’와 ‘반건국’의 표상으로 고정시키려 했다는 분석은 오늘날의 여성혐오에 각인된 역사적 (무)의식이 무엇인지 짐작케 한다. 여성혐오의 숨겨진 역사적 계기와 결절들을 탐색한 이 글의 문제의식이 ‘신자유주의적 경쟁의 심화에 따른 남성의 패배의식’만을 여성혐오의 근본원인으로 지적해온 기왕의 논의를 일신하는 데에 중요한 참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p>
<p>전 세계적 퀴어이슈에 대한 폭넓은 연구를 지속해온 한주희의 ｢퀴어정치와 퀴어지정학｣은 한국과 미국에서 전개된 (안티)퀴어운동의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정치적‧문화적 양상을 추적한 이채로운 글이다. 이 글은 일부 교회 지도자들이 주도한 한인 이민자 커뮤니티의 동성애혐오운동이 지닌 정치적 함의를 섬세하게 읽어냄으로써 디아스포라 정치, 입법투쟁의 의의와 한계, 초국가적 군사주의를 공유하는 한국과 미국의 지정학적 프레임, ‘포용과 융합’이 아닌 ‘거부와 변환’의 정치 등을 퀴어정치의 중요한 변수로 도입하여 고려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비단 미국의 퀴어정치 담론지형 내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그와 마찬가지로 개신교 우파와 충돌하면서 성장해온 한국 퀴어정치의 곤경과 전망을 사유하는 데에도 필수적이리라고 판단된다.</p>
<p>페미니즘 진영에서 제출된 정치경제학 비판을 재독해한 정정훈의 ｢페미니즘 이후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다시 생각한다―맑스주의 정치경제학비판의 전화라는 문제설정 속에서 페미니스트 자본주의 분석을 읽기｣는 페미니즘과 맑스주의의 주제를 분리적으로 사고하는 오래된 통념을 뒤집기 위한 비판적 시도다. 이 글은 페미니스트 정치경제학이 근본적으로 맑스주의의 근본논리인 잉여가치론과 재생산노동에 대한 비판적이고도 급진적인 해석이라는 점을 마리아 미즈, 실비아 페데리치, 캐서린 문과 이진경의 논의를 경유해 요령 있게 정리해낸다. 위계화된 성적 분할과 여성의 탈역량화(depowerment)야말로 “자본주의체제 자체의 재생산을 떠받치는 은폐된 근간”이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페미니즘 정치경제학 비판의 핵심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발달과정이 기실 기지촌성매매나 기생관광업, 농촌 하층여성의 노동력 동원 등 성별 권력관계에 근거한 여성노동의 은폐와 가치절하에 의해 가능했다는 점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의미심장한 사례일 것이다.</p>
<p>‘문화현실분석’ 역시 ‘페미니즘 2.0’ 특집의 연장으로, 최근의 페미니즘 이슈와 관련된 현상 및 담론, 텍스트들을 분석한 다섯 편의 글을 실었다. 2015년 5월에 열린 제17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오픈토크 후기인 조혜영의 ｢낙인, 선언 그리고 반사―“#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는 최근 트위터에서 벌어진 ‘페미니스트 선언’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다룬다. 페미니스트 선언의 개인적 동기와 역사적 함의 및 그 정치적 가능성을 두루 살피면서도, 소셜미디어가 진정한 ‘광장’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 ‘선언의 선명성’을 위해 강요되는 문제의식의 단소화 등은 계속 생각해봐야 할 과제로 남아 있는 듯하다.</p>
<p>근현대 대중서사의 젠더정치를 연구해온 조서연은 ｢‘진짜 사나이’와 ‘여자군인’, 신자유주의시대의 젠더화된 군사주의―MBC 예능 &lt;진짜 사나이-여군 특집&gt;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대중미디어의 ‘여군 재현’에 잠복해 있는 군사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 논리의 조우를 포착해낸다. 특히 &lt;진짜 사나이―여군 특집&gt;이 “병역이라는 ‘의무’의 도덕화” 논리를 그대로 체현하면서도 정작 ‘왜 총을 들어야 하는지’, ‘군사훈련을 통해 획득되리라고 예상되는 가치는 왜 필요한지’ 등의 근본적인 문제를 묻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초남성적 공간에서의 여성재현’은 필연적으로 젠더의 수행적 특성을 드러내게 된다는 지적은 깊이 새길 만하다.</p>
<p>‘커밍아웃’을 매개로 동성애(자)의 재현과 가시화의 문제를 다룬 김경태의 ｢벽장 밖으로 나온 동성애자들, 브라운관에 갇히다｣와 서동민의 ｢‘동성애자 친구’가 범람하는 시대에 나는 왜 커밍아웃하지 못하는가｣는 함께 읽히면 더욱 좋겠다. 김경태가 TV드라마의 동성애 재현을 매개로 ‘사회순응적 커밍아웃’으로 인해 휘발되는 커밍아웃의 정치성을 문제 삼는다면, 서동민은 그럼에도 여전히 ‘가시성’에 천착함으로써 존재를 증명해야만 하는 성소수자의 곤경을 역설한다.</p>
<p>최근 범람하는 ‘쿡방’의 소구력과 문화정치적 함의를 분석한 류웅재의 ｢쿡방의 정치경제학―주체의 자기통치의 관점에서｣는 ‘쿡방’이 기존 힐링 및 자기계발 문화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그보다 훨씬 더 직접적인 ‘삶정치’의 문제와 연관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쿡방’이 신자유주의적 경쟁사회에서 개인의 정서를 위무하고 삶의 안정성에 천착하는 데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음식’을 둘러싼 생산양식과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될 때에야 보다 유의미한 문화적 콘텐츠로 기능할 수 있으리라는 제언이다.</p>
<p>&nbsp;</p>
<p>이번 83호의 또 다른 ‘기획’에서는 최근 문학장을 비롯한 지식인 공론장 전반의 쇄신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고 있는 ‘신경숙 표절논란’을 다뤘다. 이와 관련해 문화연대는 &lt;최근의 표절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gt;, &lt;신경숙 표절사태와 한국문학의 미래&gt;라는 제하에 두 차례의 긴급토론회를 한국작가회의와 함께 개최한 바 있는데, 이번에는 첫 번째 토론회에서 발표됐던 세 편의 글을 수정‧보완해 실었다. 이명원의 ｢신경숙의 표절의혹을 둘러싸고―사실, 진실, 맥락의 문제｣, 오창은의 ｢베껴쓰기, 혹은 필사(筆寫)의 파국―신경숙 표절사건과 한국문학의 폐쇄성 비판｣, 심보선의 ｢생태계로서의 문학 VS 시스템으로서의 문학｣이 그것이다. 이명원과 오창은이 각각 ‘돈과 패거리권력’ 혹은 ‘출판상업주의와 문학권력의 폐쇄성’을 이번 사태의 근본원인으로 지적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입장을 취한다면, 심보선은 이번 일을 계기 삼아 ‘한국문학의 신격화’와 ‘비평만능주의’를 탈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신경숙 표절논란’에는 이밖에도 많은 논점들이 잠복해 있을 테지만, 일단 이번 호의 논의는 이렇게 출발시킨다. 독자들의 생산적인 제언을 기대한다.</p>
<p>이번 크로스서평 코너에서는 『맑스와 마음의 정치학』(심광현)과 『예술인간의 탄생』(조정환)이라는 두 책의 저자에게 교차서평을 부탁해 실었다. 조정환은 심광현의 저작을 ‘현재의 자본주의적 주권체제를 극복하고 코뮌적 ‘생태문화사회’라는 새로운 사회로 이행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려는 진지한 지적 시도’로 읽으면서도, ‘비환원주의적 시차적 접근법’, ‘코뮤니즘’ 개념의 이해, ‘마음의 정치’로의 귀결 등에 대해서는 비판적 의견을 개진한다. 반면, 심광현은 현대 자본주의의 모순적 발전으로부터 ‘새로운 인간상(다중-예술가)’을 이끌어내려는 조정환의 시도에 공감하면서도, ‘예술인간의 탄생’이라는 명제의 추출과정, ‘금욕주의적 자기배려’가 대중의 ‘삶미학’으로서 가지는 타당성, ‘이미지노동’ 개념의 이해 등에 의문을 제기한다. ‘크로스서평’이라는 이 특별한 시도를 통해 독자들은 오랫동안 서로의 저작을 탐독해온 두 저자의 공통 관심사는 물론, 첨예한 입장 차이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p>
<p>세월호참사 500일을 전후한 지금, 세월호참사 1주기에 『금요일엔 돌아오렴』 ‧ 『세월호를 기록하다』 ‧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는 세 권의 책을 매개로 제12회 북클럽에서 오간 말들을 읽는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기록, 애도, (무)책임, 연대, 국가‧사회‧언론, 머무름과 나아감’ 등의 키워드들을 벌써 500일 넘게 되뇌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뼈아프다. 특히 “상황이 바뀌면 자기가 있는 곳에서 떠나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한국사회는 ‘이민사회’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는 후지이 다케시의 말이 인상 깊다. 우리는 내년에 또 광화문광장에 모여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p>
<p>이번 ‘동아시아문화연구’ 코너에는 박자영 편집위원의 번역으로 지난해에 발표된 왕후이(汪暉) 교수의 「두 종류의 신빈민과 그들의 미래―계급정치의 쇠락과 재형성, 신빈민의 존엄의 정치」를 수록했다. 논자는 21세기 중국에 새롭게 출현한 도시의 뉴 푸어와 ‘농민공(農民工)’이라고 불렸던 비정규노동자를 각각 ‘신빈민’과 ‘신노동자’로 지칭한다. 이 두 집단의 출현배경과 상호관계에 대한 분석을 통해 노동자국가의 실패와 대표성의 문제를 구명하는 이 글은 “새로운 평등정치”를 사유하는 모든 이들에게 중요한 참조가 될 것이다.</p>
<p>‘이론의 재구성’ 코너에는 로베르토 에스포지토의 「면역적 민주주의」를 김상운 선생의 번역 및 「면역, 공동체, 민주주의 : 로베르토 에스포지토」라는 해제와 함께 소개한다. 면역과 공동체, 민주주의의 문제를 통어하는 에스포지토의 사유는 최근 메르스 사태로 촉발된 바이러스와 면역체계, 의료생명과 정치의 관계를 사유하는 데 유력한 이론적 지반이 될 것이다.</p>
<p>끝으로, ‘공간성, 육체성, 정동’ 등의 키워드들을 중심으로 한국 문학 및 영화를 연구해온 박현선 선생이 본지 편집위원으로 합류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박현선 선생의 폭넓은 관심사와 날카로운 문제의식 덕분에 더욱 깊고 풍요로워질 『문화과학』을 기대해본다.</p>
<p>&nbsp;</p>
<p>여느 때보다도 뜨겁게 불탔던 2015년 여름이 이렇게 지나간다. 돌아오는 가을에는 ‘폭력’과 ‘혐오’ 대신 ‘성찰’과 ‘연대’라는 새로운 주체화의 열정이 만발하기를. 제발.</p>
<p>&nbsp;</p>
<p>2015년 8월 서울에서</p>
<p>편집위원 오혜진</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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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71호를 발간하며 _『문화/과학』의 새 발걸음</title>
		<link>http://cultural.jinbo.net/?p=83</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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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21 Aug 2012 16:31:58 +0000</pubDate>
		<dc:creator>운영자</dc:creator>
				<category><![CDATA[글]]></category>
		<category><![CDATA[편집·기획]]></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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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소비자본주의의 도래로 혼란에 빠져 있던 한국사회 진보이론이 변혁의 국면과 이행을 놓고 서로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던 시절, ‘유물론적 문화론’을 제창하고 1992년에 창간된 『문화/과학』이 어느덧 스무 살의 성년을 맞고, 새로운 편집 체제로 또 다른 20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문화/과학』이 &#8230; <a href="http://cultural.jinbo.net/?p=83">계속 읽기 <span class="meta-nav">&#8594;</span></a>]]></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소비자본주의의 도래로 혼란에 빠져 있던 한국사회 진보이론이 변혁의 국면과 이행을 놓고 서로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던 시절, ‘유물론적 문화론’을 제창하고 1992년에 창간된 『문화/과학』이 어느덧 스무 살의 성년을 맞고, 새로운 편집 체제로 또 다른 20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문화/과학』이 제출한 수많은 이론과 현실운동의 프로그램들은 한국의 진보이론 진영에서 아주 특별한 실천적 지위를 확보했다. 『문화/과학』의 이론적 실천은 문화공학, 문화사회론, 사회미학, 생태문화코뮌 네트워크로 진화하면서 항상 우리 사회 현실 문화운동의 최전선에 서있었다.</p>
<p>새로운 개념이 만들어질 때마다 현실을 인식하는 문제의식이 조금씩 달랐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문화/과학』이 제안한 이론적 실천들은 현실 문화운동의 급진적 전화를 상상하는 데 있어 언제나 유효했다는 점이다. 『문화/과학』은 창간 때부터 포스트주의의 문화적 확장이라느니, 진보적 관점이긴 하나 최신 서양 이론의 수입상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을 일각에서 받았지만, 실제 『문화/과학』의 실천적 효과는 이론의 장보다는 현실 문화운동의 장에서 더 크게 작용했다. 『문화/과학』은 맑스가 『독일이데올로기』에서 말했던 것처럼 “인간이 말하고 상상하고 관념화시킨 것으로부터 출발한다거나 혹은 말해지고 상상되고 표상된 인간으로부터 출발하여 그로부터 육체를 가진 인간에게 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적으로 활동하는 인간으로부터 출발”하고자 했다. 문화와 과학, 이론과 현실, 노동과 감성, 예술과 테크놀로지, 문화운동과 사회운동의 형식 이분법을 넘어서 그것들을 견고하게 절합하고자 했던 『문화/과학』은 유물론적 정치 이론의 빅뱅 시대에 문화의 급진적 상상력을 진보 운동의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실험하고자 했다.</p>
<p>정치적 민주화 이후 변혁 이념의 탈색과 대중들의 소비 욕망의 증대, 그리고 청년 독립문화의 생성으로 대변되는 이른바 1990년대 문화의 시대를 거쳐, IMF, 한미FTA, 4대강, 용산참사, 쌍용차 사태로 대변되는 2000년대 본격 신자유주의 체제를 가로질러가면서 『문화/과학』 편집위원들은 지난 20년 동안 독특한 정세분석과 그에 따른 이론적 개념들을 제안하고 더불어 현실 문화운동의 실천 지반을 만들고자 분투했다. 이제 『문화/과학』은 20년간의 이론적 유산들을 미래의 진보이론 구성에 아낌없이 투자하고자 창간을 주도했던 편집위원들이 일선에서 물러나고 『문화/과학』의 또 다른 20년을 이끌어갈 새로운 편집위원들로 새로이 구성되었다. 현재 인문․사회․예술 분야의 진보이론 진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26명의 30-40대 소장학자들이 참여하는 『문화/과학』의 신임 편집위원회 체제는 진보․보수 이론을 떠나 한국의 공식 학술지와 독립 계간지 전체 역사를 통틀어 가장 광범위하고 간학제적인 연구자 그룹을 구축했다.</p>
<p>물론 『문화/과학』의 이러한 대규모 편집위원 체제가 『문화/과학』 전임 세대들의 탁월한 이론적 역량의 계승을 그대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사회 진보적 담론의 장에서 주도세력으로 등장했음을 자임하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 『문화/과학』의 물적 토대와 제작 여건은 출판 환경이 그나마 좋은 전통적인 계간지 진영과 비교해 보면, 여전히 열악하고 독립적이다. 『문화/과학』의 신임 편집위원들은 단지 『문화/과학』이 지난 20년간 해왔던 일관되고 꾸준한 이론적 실천과 그 태도를 지지했을 뿐이며, 출판자본이 독점화되고, 학술담론이 국가기관 연구체제에 종속당하는 작금의 상황에서 벗어나 전공과 이해관계를 넘어 한국사회의 진보이론의 재구성에 동참하는 뭔가 대안적인 연구자 그룹을 만들고 싶은 순수한 열정을 서로 확인했을 뿐이다.</p>
<p>『문화/과학』 신임 편집위원들은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지만, 지난 7개월간의 편집 준비모임과 편집위원회 회의를 통해서 새로운 형태의 진보적 연구자 그룹으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했으며, 이제 우리들만의 정세인식과 현실분석, 그리고 이론적 공유 과정을 통해서 천천히 우리의 목소리, 우리의 입장을 책으로 담으려 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아직 이론적으로 체계화되지는 않았지만 이제 신임편집위원들이 제안한 핵심적인 문제의식을 격식 없는 선언의 형식으로 공유하고자 한다.</p>
<p><strong>문화의 이론적 실천의 재구성!</strong></p>
<p>문화의 이론적 실천은 사회운동의 현장에서 문화운동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담론들을 구성해야 한다. 우리는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반대, 한미FTA 반대, 용산참사, 희망버스, 콜트․콜텍 등 신자유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사회운동의 현장에서 문화의 직접행동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알고 있다. 사회운동의 현장에 개입하는 직접 문화행동의 조직을 위한 기획들은 『문화/과학』의 장구한 이론적 실천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 될 것이다.</p>
<p>특히 『문화/과학』은 광기 어린 신자유주의의 재생산체계, 특히 오늘날 지배체제를 재생산하는 전초 기지가 되고 있는 현재의 한국 고등교육(대학)과 대중문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자세를 갖고자 한다. 『문화/과학』은 또한 이름이나 지향에 걸맞은 ‘미디어 전략’을 통해 (전통적이고 엘리트적인) 계간지 체제를 넘어서는 담론적 장을 추구한다.</p>
<p><strong>‘문화’의 주술을 넘어선 문화정치의 실험!</strong></p>
<p>오늘날, 현실에 처한 (문화연구의) 이론적 실천은 새로운 단계의 자본주의(≒신자유주의)가 강요하는 노동과 인간소외, 그리고 ‘자아’의 새로운 상황에 대하여, 그리고 외부 없는 글로벌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가져다주는 계급계층․가족․젠더․지역․민족의 새로운 문화정치의 상황에 대해 고찰하고 대안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어야 한다. 『문화/과학』의 연구와 글쓰기가 어떤 이론과 ‘주의’의 교조를 증명하는 데 바쳐지거나, 이론주의․과학주의 등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며, 전 시기 『문화/과학』의 실천적 모색을 높이 평가하고 그 긍정적인 면을 계승하여, 비평․이론․담론 투쟁을 통해 문화정치에 개입해야 한다.</p>
<p>『문화/과학』은 유물론적 정치이론의 빅뱅 시대에 급진정치의 이론적 실천을 제기했다. 예술세계와 생활세계를 포괄하기에 이미 균열을 내포하고 있는 ‘문화’는 급진정치의 가능성이자 동시에 덫이다. 여전히 예술적 수월성과 문화민주주의를 양극 삼아 한껏 신비화된 ‘문화’는 현대의 주술이다. ‘문화복지’며 ‘문화토건’이며 정치의 문화화라는 궁여지책이 횡행하는 우리 사회에서 궁극적인 문제는 문화를 옹호할 것인가, 비판할 것인가의 양자택일이 아니다. ‘문화’라는 현대의 주술이야말로 급진정치의 덫이다. 『문화/과학』의 과제는 ‘문화’라는 주술의 탈신비화, 그로부터 급진정치의 가능성을 복원하는 데 있다.</p>
<p><strong>문화의 독점에 저항하는 급진적 문화행동의 이론화!</strong></p>
<p>우리 시대 가장 비참한 상황은 우리의 모든 일상이 문화자본의 독점에 의해 완전히 잠식당했다는 점이다. 문화의 모든 영역들은 문화자본을 독점한 자들의 1인 독식체제로 재편되고 있고, 이로 인해 문화시장의 수직계열화는 개인들의 문화적 수용 선택의 기회를 박탈하고, 감정과 표현의 방식을 상품형식에 맞게 표준화시킨다. 문화의 독점은 문화를 즐기는 다수의 대중들을 소외시킨다. 맑스의 『경제철학 수고』에 나온 노동소외를 빗대어 말하자면 문화 독점의 시대에 문화는 문화자본가들에게는 기적을 생산하지만, 대중들을 위해서는 궁핍을 생산할 뿐이다. 문화는 미를 생산하지만, 대중들을 위해서는 기형성을 생산할 뿐이다.</p>
<p>재난과 파국의 시대, 자살과 죽음의 시대, 독점과 배제의 시대에 문화의 이론적 실천, 현실 문화운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이 재앙을 견뎌낼 우리들만의 자립적 문화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이 요구된다.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는 생태문화적 코뮌네트워크의 구성, 문화의 독점에 저항하는 급진적 어소시에이션 운동, 문화의 자기 통치성을 위한 소수 집단적 문화그룹들의 창출을 통해, 그리고 그것들을 이론화하는 지적 실천을 통해 삶의 대안을 찾아보자.</p>
<p><strong>동아시아에서 해방의 기획을!</strong></p>
<p>세계사적 체제변환에 따라 국경을 넘어선 사람들의 지적 협동과 운동적 실천이 매우 긴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특히 구미중심주의가 균열되는 것과 보조를 같이하여 비서구의 중요성이 날로 부각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동아시아의 중요성 역시 강화되는 추세에 있는데, 『문화/과학』이 추구하는 비판적 문화연구가 어떻게 제국주의와 식민지 체험으로 애증의 역사를 누적하고 있는 이 권역에서 창조적인 지적 협동을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중요해 보인다. 한국과 중국, 일본과 같은 동아시아 역내의 주요 국가들이 시장의 상호의존과 국가이익을 둘러싼 패권적 합종연횡을 거듭하고 있는 이때에 아래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의 기획은 『문화/과학』의 미래 전망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p>
<p>내셔널리즘과 자본, 미디어가 전파하는 역내 국가에 대한 증오와 견제의 시선을 멈추고 충돌과 갈등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동아시아의 현장 속에서 새로운 이해와 연대의 틀을 구성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동아시아는 글로벌과 일국의 자본 및 권력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권역 가운데 하나이다. 이들 자본/권력이 변모시키는 현실과 그 폐해를 일국의 경계를 넘어서 권역적으로 다루는 시선이 요구된다. 이 시선은 권역에서 합종연횡하며 때로는 긴장관계를 연출하는 자본/권력의 제 형태를 포착하고 또 이를 거스르는 목소리와 움직임을 간취하여 대안적인 운동과 삶의 틀을 구성하는 데 더없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와 더불어 권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비판적 문화연구 관점의 공유와 재전유는 서구 중심의 이론과 실천 조명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론과 입장의 구성에 기여할 것이다.</p>
<p><strong> 과학기술혁명의 시대, 정보운동의 실천!</strong></p>
<p>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에 저항하며 연대하는 문화조차 그 지배문화를 구성하는 것과 똑같은 기술이 매개하고 있다면, 기술을 바꾸지 않고, 기술문화에 대한 비판과 대안 없이, 어떠한 사회 변혁이 가능할 것인가? 신권위주의와 정보자본주의가 합쳐진 돌연변이적 한국 상황에서, 뼛속까지 삼투하여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 뉴미디어 정보통신 테크놀로지의 힘에 비해 이를 저항과 역능의 에너르기로 전유하는 데 우리는 대체로 무관심하거나 무지했다. 『문화/과학』은 이제 새롭게 부상하는 뉴미디어와 정보문화 영역에 대한 대안적, 전복적 전유를 시작할까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새로운 정보자본주의 아래 기획되는 정보 문화적 포획 기제들, 즉, 인지․정동․놀이․잉여노동에 근간한 새로운 가치 포획 체제, 생정치적 권력과 자본 감시, 재벌에 의해 새롭게 구축되는 정보독점의 지형에 적극 개입하려 한다. 우리는 마찬가지로 이에 대한 사후 해석의 강단 학문적 관심을 경계한다. 오히려 정보․ 미디어적 실천을 독려하기 위한 이론적 실천 작업을 수행할 것이다. 점점 스마트해져가는 정보권력의 질곡과 파국을 알리고 이의 재생산에 흠집을 내려는 급진적 분석과 시도에 긍정한다. 주류화하는 정보권력에 대응해, 민주적 전자 소통로와 소통공간의 창출, 아방가르드적 대안 미디어와 정보매체들의 발굴, 비판적 기술철학과 대안적 기술 체계론의 마련, 아래로부터의 ‘정보문화사’와 저항적 정보문화이론의 구성으로 답하려 한다.</p>
<p><strong>노동해방, 성해방, 인간해방이라는 오래된 명제를 다시 나눠가지기를!</strong></p>
<p>많은 사람들이 출산을 거부하고, 삶을 지속하기를 포기하는 현실은 여전히 인구통계학적 프레임으로만 포착된다. 이른바 출산율 저하와 자살률 증가는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진행된 성과 노동에 대한 국가관리 및 통제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한국사회에서 노동과 성은 모두 생산성 제고를 위한 도구로서 국가의 통제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 통제 메커니즘에서 각 개인은 하나의 인간으로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 향상을 위한 도구로 간주되었다. 또 그 도구는 노동과 성이라는 각기 분할된 쓸모를 할당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분할이 이른바 남성젠더와 여성젠더라는 젠더 구별을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그런 점에서 실상 한국사회에서 노동과 성의 ‘해방’이란 이러한 국가 통제에 대한 저항이었으며, 동시에 성해방은 노동해방 문제와 분리될 수 없으며, 그 역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점에서 이론상으로는 페미니즘과 사회주의의 ‘연대’는 역사적 필연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러한 ‘연대’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으며, 오늘날에도 그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러한 연대의 시작은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 현실에 대한 역사적 전망을 나눠가짐으로써 가능한 것이리라. 『문화/과학』의 새로운 출발점에 서서 노동해방과 성해방이라는 참으로 오래된 명제를 인간해방이라는 또 다른 오래된 명제를 토대로 서로 나눠가지는 연대의 새로운 미래가 가능하기를 기대해 본다.</p>
<p><strong>소수자들의 삶과 일상에 대한 기록과 연대!</strong></p>
<p>자본주의의 심화가 우리 사회의 개별 주체성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변화의 핵심에는 다양한 소수자 주체의 등장과 증가가 있다. 노동주체는 더 이상 노동자로만 환원될 수 없으며, 새로운 다양한 소수자 주체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비정규직, 청(소)년, 성노동자, 장애인, 성적소수자, 외국인노동자, 결혼이주여성, 노숙자, 미혼모 등등. 이제 우리는 이미 등장한 다양한 소수자들의 삶과 일상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으며, 그러한 관심은 단순한 확인을 넘어 관찰과 기록, 연대의 지점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주체성에 대한 좀 더 세밀한 접근과 분석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며, 동시에 사회체제 분석 및 사회변혁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세우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기획은 궁극적으로 ‘문화혁명’을 꿈꾸는 우리로서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지점이다. 결국 주체성의 문제를 어떻게 사유하는가는 현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자 미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라 믿는다.</p>
<p>우리의 대안의제들과 정세분석은 이제 매호 발간되는 『문화/과학』의 특집에 반영될 것이다. 『문화/과학』의 신임 편집위원들이 만든 첫 번째 특집 주제는 ‘문화행동’이다. 200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 체제의 전면적 지배에 저항하는 수많은 사회운동의 현장에서 낯설었지만, 특별했던 것은 ‘사회운동’과 ‘문화운동’의 즐거운 연대였다. 문화운동이 사회운동에 대한 사후적 개입이 아닌, 사회운동이 문화운동에 대한 정언적 명령이 아닌, 사회운동과 문화운동의 비환원적 생산적 연대는 동시적이고 직접적인 관계를 형성했다. 우리는 이러한 문화운동의 현장성을 ‘문화행동’이란 이름으로 의미부여하고자 한다.</p>
<p>특집에 실린 5편의 글은 우리 시대 ‘문화행동’의 이론적 구성과 국내외 실천 사례들을 보여준다. 먼저 이광석의 ｢오늘날 문화행동의 개념화와 역사적 유산의 재전유｣는 문화행동의 이론적 궤적을 20세기 초반 유럽의 아방가르드 운동에서부터 1960-70년대 상황주의, 그리고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문화운동에 이르는 역사적 운동 속에서 찾고자 한다. 그는 문화행동은 “일상 속에 편재화되어 가는 일상 권력에 대한 대중들의 비판적 미디어-예술-온라인 영역 간 횡단을 통해 스스로 창의적 주체가 되어 벌이는 적극적인 문화정치적 개입 행위”로 설명한다. 이러한 정의를 기반으로 이 글은 문화행동의 몇 가지 실천적 지점들을 주목하고자 한다. 최근 운동의 현장에서 발견되는 거리정치, 게릴라적 미디어 실험, 예술행동주의의 흐름들이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미학적 개입과 실험정신을 공유한다는 점, “저항 운동의 경험들이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과 대안적 문화, 예술운동과 합쳐지고 상호간 결합하면서 좀 더 실험적이고 융․복합적인 형태로 거듭나고 있다”는 점, 파견미술, 공장 전시․공연, 스쾃운동, 참사현장 전시, 희망버스, 플래쉬몹 등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장성과 장소 특수성에 기반한 문화행동의 가능성”을 주목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자본주의의 상품미학과 자본의 스펙터클화를 막을 수 있는 유연한 힘”은 바로 문화행동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p>
<p>작년 반세계화, 반금융화 운동의 최전선에서 뜨거운 주목을 받았던 뉴욕 월가에서의 “점령하라!” 운동을 직접 현장에서 참여관찰하면서 일련의 투쟁 연대기를 기록한 고병권의 ｢민주주의, 그 새로운 무한정성―월가 점거 운동에 대한 하나의 보고｣는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삶의 불가능성, 혹은 “체제의 불가능성을 둘러싼 독해의 역전”을 시도한다. 그는 월가 주변 주코티 공원에서 벌어진 “점령하라!” 운동을 목도하면서 “우리가 지금 벽처럼 마주하고 있는 ‘불가능’을 자각할 때만 어떤 ‘가능’이 열린다는 걸 월가 점거를 보면서 실감했다.” 이 글은 현실에서 불가능의 높은 벽에 부딪친 민중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발화주체가 되기 위해 “당신이 원하는 삶의 형태로 당신 투쟁의 형태를 만들라”는 민주주의의 직접행동을 몸소 체험하는 과정을 주목한다. 그리고 “점령하라” 운동을 교훈삼아 한국의 도심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현장 점거운동들이 “생명과 무기, 삶과 투쟁의 하나라는 사실”을 각인하기를 바란다.</p>
<p>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운동에 개입했던 수많은 문화행동의 사례들을 설명한 이원재의 ｢예술, 행동하라!―사회운동과 예술행동의 연대기｣는 사회운동의 위기를 기존 시민운동 패러다임의 한계, 관료화된 대중조직 운동의 몰락에서 찾고 있다. 실제 수많은 문화행동의 현장에 참여했던 그는 그 대안으로 직접행동을 원리로 한 예술행동주의를 제안한다. 다양한 예술행동의 사례를 분석하면서 “예술행동은 사회적 변화와 대안을 제시하는 과정에 있어 예술이 상상할 수 있고, 감당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자기 실천”이며, 이를 위해 “예술행동은 좀 더 급진적으로 상상하고, 구체적으로 실천하며, 적극적으로 연대”하며, “일상성의 확장을 통해 더 다양하고, 구체적이며, 지속가능한 사회운동”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이 글은 주장한다.</p>
<p>지금까지의 문화행동에 대한 글들이 대체로 진보적 운동의 진영 안에서 벌어진 것들을 분석했다면, 남은 두 개의 글들은 대중적인 문화행동이란 이름으로 파생되어 발생한 사례들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다. 문강형준의 ｢양날의 칼: 포퓰리즘, 민주주의, 문화행동｣은 최근 문화행동에서 드러나는 특정한 대중화 경향에 관심을 두면서, 그것이 논쟁적인 포퓰리즘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그는 촛불집회와 나꼼수, 삼국카페 등의 현상을 다루면서 포퓰리즘과 민주주의의 긴장관계를 주목하고 있는데, 그에 의하면 그 긴장관계는 “대의/재현 민주주의 ‘이론’이 ‘실천’의 영역 속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이다. 필자는 ‘촛불’과 ‘나꼼수’ 요구의 결과가 결국은 제도 정치 내에서 일정한 지분을 요청하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점은, 포퓰리즘적 스타일이 오늘날 탈정치화된 민주주의의 자장 안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반증해 준다고 주장한다.</p>
<p>최근 뜨거운 이슈 중의 하나인 연예인들의 행동주의를 분석한 최철웅의 ｢연예인 행동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문화정치｣는 최근 주류 미디어가 신자유주의적 “사회적․정치적 맥락을 사상한 채 단지 연예인 행동주의를 과장되게 칭송하거나 냉소적으로 회의하는 데” 그치고 있음을 비판하면서 “연예인 행동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며, 어떠한 정치적 함의를 가지는가”를 분석한다. 그는 ‘소셜테이너’라는 명칭 자체가 정치적 의식을 거세한 용어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처한 모종의 정치적 곤경 또는 무의식을 드러낸다”고 꼬집으면서 연예인 행동주의는 분명 세상을 변화시키지만 정치를 변화시키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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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문화/과학』은 신임 편집위원회 체제에 걸맞게 이번 호부터 편집구성을 새롭게 시도했다. 지난 호까지 고정 꼭지로 배치되었던 ‘문화비평’과 ‘사회운동’ 분야를 정리하고, 대신 논쟁, 문화현실분석, 인물비평, 이론의 재구성, 해외 연구동향을 새롭게 신설했다. 또한 원고 꼭지수를 줄이고, 개별 원고의 분량을 늘려 글의 호흡을 길게 가져가도록 했다.</p>
<p>논쟁에 실린 첫 번째 토픽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음악저작권 문제를 중심으로 대중음악산업의 현황과 대안을 다루었다.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가 주최한 월례포럼의 토론 내용을 녹취한 논쟁의 원고는 대중음악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음악의 종 다양성 확보를 위해 독립 지원기구의 설립, 음악저작권 징수 및 분배 체제의 변화, 그리고 비주류 독립음악의 활성화 가능성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p>
<p>문화현실 분석에는 최근 주목을 받았던 영화와 드라마를 분석한 두 편의 글을 실었다. 강정석의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의 현실 효과에 대한 단상｣은 최근 한국영화에 큰 이슈를 몰고 왔던 &lt;도가니&gt;와 &lt;두 개의 문&gt;을 선택하여 영화가 현실의 재현을 넘어 사회적 효과를 어떻게 획득하는지를 분석한다. 그는 이 글에서 영화적 현실 효과의 원인은 단선적이지 않고 오히려 다층적 프레임들의 ‘중층결정’의 산물로 볼 것을 강조한다. &lt;도가니&gt;와 &lt;두개의 문&gt;과 같이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조차도 단순히 현실을 반영하는 것만은 아니며, 특정한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효과는 다양한 참여 주체들이 구성한 수많은 프레임들이 겹쳐지는 과정을 통해 발생하는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p>
<p>올해 인기 드라마 중의 하나인 &lt;추적자&gt;를 분석한 이기형의 글(｢“분노하라”와 대중드라마가 주는 함의: &lt;추적자&gt;가 드리우는 한국사회 속 현실｣)도 드라마의 텍스트 재현과 텍스트의 사회적 환기효과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 그는 “&lt;추적자&gt;가 견인하는 상당한 대중적인 관심의 중심에는 무엇보다도 일그러진 정치와 사회적 현실에 대한 강렬한 환기와 연상 효과와 더불어, 가상적인 텍스트이긴 하나 이 텍스트가 매개하는 당대의 일그러진 사회정치상과 거기에 연동하는 대중의 감정구조(structure of feeling)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p>
<p>근대성과 문화연구 꼭지는 앞으로 매호마다 우리 근대 문화사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문화적 토픽들을 발굴해서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그 첫 번째 순서로 근대 시절 대중들의 중요한 사교공간이었던 다방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다룬 이기훈의 글(｢‘다방’, 그 근대성의 역정｣)을 싣는다. 이기훈은 식민지 시절 다방이라는 근대적인 장소가 어떻게 한국사회에 도입되었고, 그 언어의 의미 변화가 무엇을 지시하는지, 대중들은 다방의 공간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를 분석한다.</p>
<p>『문화/과학』의 새로운 편집체계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인물비평은 한국 지식 담론에서는 활발한 글쓰기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문제적 인물에 대한 문화비평을 고정적으로 싣고자 한다. 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부터 올해 총선과 대선 국면에 이르기까지 대중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는 안철수의 존재와 그 현상을 분석한 안병진의 ｢안철수 현상에 대한 단상: 서구적 자유주의형 리더｣는 안철수 현상이 대의제에 대한 오래된 믿음의 질병에 도전하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 극복이 더 세련된 대의제로 귀결될지 아니면 다른 차원의 민주주의로의 길을 조금 더 열지는 미확정”이지만 분명한 사실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안철수 현상은 기존의 전통적 보수나 진보의 ‘믿음의 질병’과 투쟁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p>
<p>『문화/과학』은 앞으로 치열한 이론적 실천의 시각을 견지하면서 동시에 학술적 가치가 높은 글들을 비중 있게 다룰 계획이다. 이론의 재구성에는 푸코의 에토스라는 문제설정을 통해 통치성을 재독해하는 임동근의 글(｢‘인간’과 장치: 푸코 통치성의 문제설정｣)과 문화연구에서 해석의 정치성을 재고할 것을 주장하는 이동연의 글(｢문화연구와 해석의 정치성｣)을 싣는다. 임동근은 ‘인간-종’, ‘권력과 장치’의 문제설정을 통해 푸코의 통치성의 의미를 간파하고자 하는데, 그에 의하면 “푸코의 통치성이라는 문제설정은, 사물이 되었지만 사람이기도 한 인간과 권력 기계의 움직임들을 익힌 다음에, 허전하고 비어있는 주체의 자리에 ‘자기’라는 덩어리를 집어넣으며 이론 밖으로 나갈 것을 권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p>
<p>이동연의 글은 영화 &lt;파주&gt;를 꼼꼼하게 분석하면서 문화연구에서 그동안 간과했던 텍스트의 정치적 무의식을 독해하는 실천이 결국은 현실의 중층적인 정치 지형들을 꼼꼼하게 파악하는 데 있어 긴요한 지적 작업임을 강조한다.</p>
<p>마지막으로 중국 상해지역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문화연구자 중의 한 사람인 화동사범대학교의 뤄강 교수의 글(｢상하이 노동자신촌: 사회주의와 존엄이 있는 ‘생활세계’｣)을 번역해서 싣는다. 『상하이국자』(上海國資)라는 경제 월간지와 뤄강이 대담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이 글은 1940년대 이후 상해의 사회주의 개조와 건설의 역설적 역사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흔적을 ‘노동자신촌’에서 발견하고 ‘사회주의 도시’로서의 상하이의 역사를 재건하기 위한 돌파구로 노동자신촌에 주목하면서, 작금의 상해 공간과 주체의 친자본주의화 문제를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p>
<p>&nbsp;</p>
<p>『문화/과학』 71호는 새로운 진보적인 문화이론의 실천을 기획하는 신임편집위원들의 첫 이정표이다. 무엇보다도 지난 20년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600회가 넘는 장구하고 치열한 편집회의를 통해 수많은 이론을 생산했던 강내희, 심광현 선생님을 비롯한 『문화/과학』 전임 편집위원들께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 분들의 순수한 열정과 노고가 있었기에 『문화/과학』의 신임편집위원들이 이렇게 탄탄한 진용을 갖출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문화/과학』은 앞으로 ‘재난과 자본주의’, ‘독점을 넘어서는 문화자립의 비판적 성찰’, ‘동물과 생태’, ‘동아시아의 정보자본주의’와 같은 토픽들을 놓고 내부 세미나를 통해 한국의 진보이론 진영에 생생하고 건설적인 화두를 던질 계획이다.</p>
<p>『문화/과학』 신임 편집위원회의 이론적 분투를 지지하고 격려하는 독자들이 더 많이 생겨나길 고대해 본다.</p>
<p>&nbsp;</p>
<p style="text-align: right;">2012년 8월</p>
<p style="text-align: right;">편집인 이동연</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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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문화과학』을 창간하며(1992)</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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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31 May 1992 15:00:56 +0000</pubDate>
		<dc:creator>운영자</dc:creator>
				<category><![CDATA[글]]></category>
		<category><![CDATA[편집·기획]]></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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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역사의 한 순환이 끝나고 새로운 순환이 시작하고 있다. 인류 진보의 대안을 제시하던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세계는 자본주의 단일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이제 지배세력인 자본은 전지구적으로 별 저항도 받지 않고 그 지배를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 전세계 진보세력은 심대한 위기에 처해 있으며 우리라고 &#8230; <a href="http://cultural.jinbo.net/?p=77">계속 읽기 <span class="meta-nav">&#8594;</span></a>]]></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역사의 한 순환이 끝나고 새로운 순환이 시작하고 있다. 인류 진보의 대안을 제시하던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세계는 자본주의 단일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이제 지배세력인 자본은 전지구적으로 별 저항도 받지 않고 그 지배를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 전세계 진보세력은 심대한 위기에 처해 있으며 우리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국내 진보진영은 이론과 실천 양 측면에서 침체의 늪에 빠져 일부는 &#8216;청산&#8217;의 길을 가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위기 속에서도 새로운 모색과 창조를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민중이 있기 때문이다. 자본의 전지구적 지배로 인류 운명이 더 큰 위기에 빠진 지금이야말로 역사의 또다른 순환을 위한 새로운 기획을 세울 때다. 우리는 『문화과학』으로써 이 기획에 동참하고자 한다.</p>
<p>우리가 &#8216;문화과학&#8217;의 이름으로 진보의 기획에 동참하는 것은 문화가 전에 없이 중요한 계급투쟁의 장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현단계 지배세력은 독점자본주의체제의 구축으로 사회의 전영역을 장악하면서 자신의 지배구조를 재생산하고 있고 진보진영은 그 지배구조를 변혁하고자 한다. 오늘날 문화가 이 재생산과 변혁에 대해 가지는 역할은 아주 크다. 문화는 재생산에 지대한 기능을 하는 이데올로기 작동의 중심 영역이면서 또한 변혁의 꿈이 마련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에 대해 과학적인 인식을 확보하는 것은 현단계 지배에 대한 정확한 대응의 하나이며 지배구조의 변혁을 위한 한 단초를 여는 일이다. 우리 『문화과학』은 문화에 대한 과학적 인식 확보를 통해 변혁에 기여할 것을 창간취지로 삼는다.</p>
<p>우리가 『문화과학』의 성격을 문화이론전문지로 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문화를 과학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문화이론의 수립은 필수다. 하지만 현재 과학적 문화이론은 그 정초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현단계 문화이론은 관념론으로 크게 물들어 있고 과학적 문화이론 구성을 위해 필요한 기본 개념들조차 아직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관념론으로 가동되는 부르주아 문화이론이 진보적 문화이론 진영 일부에 침투하는 일도 그래서 드문 일은 아니다. 과학적 문화이론을 수립하려면 문화이론에 침투한 관념론을 극복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우리는 이 극복이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절대 포기해서도 안될 과제임을 명심하고 있다.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유물론적 문화이론의 정초를 놓아야 한다. 관념론적 문화이론을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유물론의 터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관념론적 부르주아 문화이론을 비판하기도 하겠지만 그것의 극복을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이고자 하며 따라서 유물론에 바탕을 둔 과학적 문화이론을 구성하고자 한다.</p>
<p>우리는 과학적 문화이론의 구성으로 진보적 문화이론 진영, 나아가 실천 진영에 기여하고자 한다. 진보적 문화 세력은 관념론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고 할 만큼 과학적 문화이론을 탄탄히 세우고 있지 못하며 그 전략적 시야도 아직은 충분히 넓다고 할 수 없다. 예컨대 문화운동권에서 문화를 문예 중심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이런 사정을 반영한다. 물론 문화운동권은 &#8216;현실주의&#8217; 이름으로 부르주아 문화이론의 관념론적 경향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문예론에 국한되어 전개됨으로써 문화운동이 문예운동에만 초점이 맞춰져 전체 문화판도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면도 없지 않다. 우리는 과학적 문화이론의 수립을 통해 문예론의 한계를 극복하고 문화론의 총체적인 전망을 확보하여 문화운동 전략을 제대로 수립하는 데 보탬이 되고자 한다. 물론 이것은 현단계 진보적 문예론이 지향하는 현실주의론이 오류 그 자체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주의적 시각은 우리에게 소중한 자산이되 이제 현실주의 문화론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다.</p>
<p>우리는 우리의 작업이 기본적으로 이론적 실천에 속하므로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화적 실천의 단순한 일부일 수 없다고 믿는다. 따라서 이론적 실천으로서 『문화과학』의 작업은 문화적 실천으로 대체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론적 실천이 전체 사회적 실천의 한 부분인 한 그것은 문화적 실천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실천과 융합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는 곧 『문화과학』이 변혁의 꿈을 품고 출발한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자본주의체제가 만들어내는 억압적 문화현실을 더 나은, 살맛나는 것으로 바꾸기 위한 전략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주의 문화현실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 필수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분석이 정태적인 비판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변혁의 전망 속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비판적 분석은 문화현실에 대한 개입을 목표로 하며 특히 지배세력이 문화현실에서  제거하고자 하는 정치를 되살리려는 목적을 가진다. 동시에 『문화과학』은 이미 문화현실에서 정치를 실천하고 있는 쪽에 대해서도 &#8216;이론&#8217;의 이름으로 개입하고자 한다. 지배세력은 자신의 문화적 실천에서 부르주아 정치를 실천하며 문화운동권은 또 그 나름대로 다양한 종류의 정치를 실천하고 있다. 『문화과학』은 문화현실에서 암시적으로나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다양한 정치적 실천에서 현단계 지배체제의 억압적 성격에 근본적으로 맞서는 해방의 정치에 동참하고자 한다. 문화운동의 지평을 넓히고 그 내부에 스며든 관념론을 제거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은 이미 했지만 우리는 과학적 문화이론의 수립을 통해 문화운동권의 일부가 드러내고 있는 오류에 대해서도  개입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 개입이 정치에 대해 &#8216;과학&#8217;이 해야 할 몫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이론을 위한 이론에 집착하지 않고 이론과 실천의 올바른 결합을 지향하며 이론적 실천에 임하겠다는 말이기도 하다.</p>
<p>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문화과학』은 크게 보아 세 가지 작업을 해야 한다고 보며 우리의 지면 구성에 그것을 반영하고자 한다. 첫째, 이미 말한 대로 우리의 주요 과제는 과학적 문화이론을 구성하는 일이다. 우리는 현단계 우리의 이론적 역량이 얼마나 미흡한지 잘 안다. 우리가 과학적 문화이론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유물론적 문화이론에 많이 기대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까지고 &#8216;이론선진국&#8217;의 이론들을 수입해서 쓸 수는 없다. 이제 우리도 이론 생산에서 자생력을 길러 세계적 수준의 이론, 문화이론을 수립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문화과학』이 과학적 문화이론의 구성을 위한 이론화전략에 가능한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p>
<p>둘째, 이 이론화전략은 사회적 실천, 특히 문화적 실천과 관련된 것이므로 우리는 문화적 실천을 위한 전략 마련에 부심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문화운동의 전략구상을 중요한 과제로 삼는다. 우리는 이 전략구상에 문화정세 분석이 핵심적 부분을 이룬다고 본다. 오늘날 문화가 지배구조의 재생산에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역사과정의 한 부분으로서 물질적 생산과 재생산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문예작품의 현실 개입은 올바른 반영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문예제도, 문화제도 안에서 그것이 처한 위상에 의해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문화운동은 이와 같은 문화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이어야 할 것이다. 『문화과학』은 문화정세를 과학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며 그것에 입각한 문화운동 전략 구상을 하고자 한다.</p>
<p>셋째, 『문화과학』은 문화현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 오늘날 우리 문화현실은 자본의 지배 확장으로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각과 청각 등 감각들의 새로운 관계설정이 일어나고 있으며 문화의 지형이 크게 바뀌었다. 이제는 &#8216;읽을 거리&#8217;들이 반드시 문예작품의 형태로만 나타나고 있지는 않으며 또 문예작품은 그것대로 상품 광고에 차용되기도 하는 등 문화의 내부 역학구조도 바뀌고 있다. 우리는 이처럼 변동하는 문화현실을 변혁적 시각에서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며 이 분야에서 새로운 전범을 세울 것을 바란다. 다양한 문화현실을 풍부하게 분석하고 변혁의 전망을 읽어내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을 도입하고자 『문화과학』은 &#8216;문화현실분석&#8217;란을 고정으로 배치한다. 물론 처음 시도하는 일이라 한 술밥에 배부르지 않을 것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 난을 통해 문화를 물질운동으로 파악하면서 그 기능과 역동성을 보여주는 유물론적 글쓰기 관행이 확립되기를 기대한다.</p>
<p>우리는 이제 두려움과 희망이 교차되는 어려운 첫발을 내딛는다. 정세는 엄중하고 역량은 미약하다. 그러나 가야할 길을 가는 것은 더 나은 미래를 믿는 사람들의 자세일 것이다. 우리는 과학을 지켜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자 한다.</p>
<p>&nbsp;</p>
<p style="text-align: right;">『문화과학』 편집위원</p>
<p>* 『문화과학』의 제호를 눈여겨 보시라고 독자 제위께 권하고 싶다. 혹자들에게는 어설프게만 보일 『문화과학』의 표제는 &#8216;문화&#8217;와 &#8216;과학&#8217;이 동렬로 배치되어 있지 않고 엇비슷하게 놓여 있는데 그렇게 한 데는 이유가 없지 않다. 그 제호배치는 문화에 대한 과학이라는 의미의 &#8216;문화과학&#8217;보다는 혹은 &#8216;문화&#8217;와 &#8216;과학&#8217;의 평면적 결합을 시사하기 위하여 문화과학을 일렬로 배열하지 않고, &#8216;문화&#8217;와 &#8216;과학&#8217; 간에 있는 분리, 연관, 또는 긴장의 관계들을 시각적으로 떠올리고자 하는 의도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창간호에서 이미 밝힌 바지만 우리는 그런 취지에서 문화를 과학의 문제로서 파악하면서 문화적 실천과 이론적 실천의 관계를 나름대로는 면밀하게 규명하고자 했다.</p>
<p>&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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