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20호] 문화과학 89호 신간안내

 

◼ 89호 특집 <블랙리스트>: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의 좌파 문화예술계 청산과 예술인 블랙리스트와 예술검열의 실체 및 예술인들의 저항의 의미를 5인의 필자가 분석!

기획 <광장의 정치와 시민혁명>: 광장에서의 촛불집회의 의미, 촛불민심을 외면하는 대의제 민주주의 정치의 한계 비판, 광화문 광장 예술인 캠핑촌의 노숙 체험기!

문화현실분석: 김소영 교수의 박근혜의 컬트적인 주술정치와 그 문화심리적 의미를 해부!

동아시아문화연구: 요시다 히로시 교수의 디지털 게임플레이에서 ‘타자’의 문제를 분석!

이론의 재구성: 현대예술의 노동과 상품의 문제에 대한 논쟁들 수록!


<목  차> 

특집: 블랙리스트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블랙리스트와 유신의 종말」

◾강정석(지식순환협동조합 사무국장), 「블랙리스트와 예술검열 실태 분석: MB정부에서 박근혜 정부까지」

◾천정환(성균관대학교 교수),「현대 한국 검열의 계보학: 박정희 정권 시기의 검열과 문예진흥정책을 중심으로」

◾박소현(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박근혜 정부 문화융성정책의 실체와 문제점」

◾이원재(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 「블랙리스트 예술검열에 저항하는 예술운동의 실천과 전망」

 

기획: 광장의 정치와 시민혁명

◾김성일(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광장정치의 동학: 6월 항쟁에서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까지」

◾이광일(계간 <황해문화> 편집위원),  「그들이 대중을 다루는 아주 오래된 방식―촛불은 보수 자유주의 정치세력을 넘을 수 있을까」

◾이두찬(문화연대 활동가), 「광장은 더 나은 사회를 상상한다―광화문 캠핑촌에서 살아가기」

 

제18회 ‘북클럽’

◾『아주 친밀한 폭력: 여성주의와 가정 폭력』(정희진, 김은희, 양경언, 권명아)

 

인문장치의 발견

◾권명아(동아대학교 교수), 연구하는 활동가, 활동하는 연구자를 지향하는 작지만 튼튼한 연구소: <이주와 인권연구소>를 만나다

 

문화현실분석 

◾김소영(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주술적 근대와 미디어: 박정희라는 컬트, 박근혜라는 오컬트」

◾전규찬(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박근혜-최순실-이재용 중층 게이트 열기, 읽기, 글쓰기」

◾안성민(문화연대 활동가), 「<2016 문화활동가대회>를 돌아보며」

 

근대성 연구

◾이기훈(연세대학교 교수),  「학교와 재난―한국 근대의 두 얼굴」

 

동아시아 문화연구

◾요시다 히로시(吉田 寛)(리츠메이칸대학교 교수), 「디지털 게임플레이와 ‘타자’에 대한 신뢰」

 

이론의 재구성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 영화감독), 「빵이 없으면 예술을 먹어라! 현대 예술과 파생 파시즘」(번역: 김상민)

◾맥켄지 워크(McKenzie Wark, 뉴스쿨 미디어문화연구 교수), 「디지털 출처와 파생상품으로서의 예술작품」(번역:     김상민)

 

<특집: 블랙리스트>  

특집 주제선정의 취지와 배경:

    우리는 지금 사상 유례 없는 대통령 탄핵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2016년 10월경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의 충격적인 국정 농단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시작된 촛불 혁명은 광장에 쏟아져 나온 시민들의 분노와 저항에 힘입어 대통령 하야 국면에서 탄핵 국면으로 이행했다. 2016년 12월 31일까지 광화문 광장을 포함해 전국에서 모인 천만 촛불 시민들은 그저 대통령의 즉각 퇴진과 탄핵만을 외치지 않았다. 그들은 차별 없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 사회적 재난이 없는 세상, 그리고 예술검열이 없는 세상을 위해 촛불을 들었다. 다시는 돈과 권력으로 배제되고 버림받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도록, 통치자의 무능함과 사악함으로 세월호 재난과 같은 억울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더 이상 노동자가 잔인한 정리해고 때문에 거리에 내몰리지 않도록, 천만의 촛불은 정권교체, 정치교체를 넘어 완전한 국가와 사회 교체를 위해 광장으로 나서고 있다. 박근혜 탄핵은 결국 40년 넘게 한국사회를 억압했던 유신의 탄핵, 공안정치의 탄핵이다. 지금 탄핵의 국면이 박근혜 개인의 탄핵을 넘어서 부정부패, 정경유착, 보수-수구 정치의 탄핵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바로 이때, 유신의 공안정치를 재생산한 수구 세력들과 그 ‘도적패들’을 청산해야 한다.

박근혜 통치 권력의 역사적 유산인 “유신 공안정치”의 실체를 가장 분명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 것이 바로 “블랙리스트”이다. 『문화/과학』이 89호 특집 주제로 “블랙리스트”를 정한 것은 단지 문화이론 전문지로서 책임 때문만은 아니다. 더욱이 이 심각한 문제를 문화예술계만의 문제로 재론하기 위함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가 블랙리스트에 주목하는 것은 이 언표가 역사적 유신 정치의 징표이자 그 종말을 가장 함축적으로 표상하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는 비단 예술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유신의 공안정치가 지금까지 지속되는 동안 노동자, 농민, 빈민, 학술연구자, 진보적 정당 정치인의 신체에 낙인찍은 인장이다. 지금 탄핵 국면에서 우리가 상대할 것은 형식적인 정권교체만이 아니라 우리를 낙인찍은 블랙리스트 유신정치 그 자체이다.

소문만 무성했던 블랙리스트 실체가 세상에 공개되면서 예술인들은 분노했지만, 한편으로 명예로웠다. 블랙리스트는 배제의 낙인이자 양심의 훈장이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 사태로 인해 예술가들은 오랜만에 광장에 모였고, 연대하고, 투쟁했다. 그리고 김기춘, 조윤선을 비롯해 블랙리스트를 지시, 작성, 전달, 실행한 박근혜의 수족들을 감옥으로 보냈다. 광화문 광장에 텐트를 치고 노숙 농성한 예술인들은 탄핵국면의 최전선에서 광장을 지키고 저항의 시간을 지속시켰다. 예술인 블랙리스트와 그 저항은 새로운 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혁명기의 진지전인 셈이다.

 

<특집글 소개>

이동연, 「블랙리스트와 유신의 종말」

이 글은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인식론적으로 규명하는 글이다. 그는 블랙리스트가 박근혜 통치의 본질을 보여주는 언표라는 점에서 하나의 기호체계이며, 현실의 텍스트 안에서 스스로 의미작용을 가진다고 말한다. 이는 블랙리스트가 “감시가 필요한 위험인물들의 명단”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넘어서 박근혜 통치의 위기의식을 드러내는 심리적 언어이자, 탄핵 국면에 개입하는 정치적 언표라는 점을 강조한다. 필자는 블랙리스트가 형성되는 시간의 계열과 블랙리스트의 전달체계를 분석하면서 역사적 히스테리의 산물인 블랙리스트가 역설적이게도 유신의 종말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강정석, 「블랙리스트와 예술검열 실태 분석: MB정부에서 박근혜 정부까지」

이 글은 보수정권 10년간 예술검열 사례들을 통시적으로 분석한다. 그는 “블랙리스트가 ‘보수우익 세력의 영구집권 로드맵’이라면, “우리는 즉각적으로 이명박 정부에서 황폐화시킨 문화예술의 살풍경의 기억을 다시금 소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현재의 ‘블랙리스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명박-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보수 우익세력의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좌파 척결 전략’의 전모를 파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는 “문화예술계 공공성 강화작업”이란 말로 대신했고, 이는 이명박 정부 당시에 좌파예술가 척결을 ‘문화권력 균형화전략’이라고 말한 것과 유사하다. 필자는 마지막으로 지그문트 바우만의 이론을 언급하면서 이러한 가치중립적인 듯한 관료주의의 언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악의 사회성’을 갖고 있다고 비판한다.

천정환, 「현대 한국 검열의 계보학 : 박정희 정권 시기의 검열과 문예진흥정책을 중심으로」

이 글은 한국문화에서 검열의 내재성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그는 “검열을 빼고는 한국의 지성사도, 근대 문예사나 독서 문화사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면서 “1987년 이후의 민주화 이전까지 한국 문학ㆍ예술사는 노예의 언어와 몸짓”으로 이어졌고, 1987년 민주화 체제 이후에도 “검열 그 자체는 중단된 적 없다”고 말한다. 박근혜 정권의 검열과 ‘문화융성’은 “유신시대의 탄압+문예진흥 정책에 그 원형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문화에 대한 반달리즘적인 파괴와 냉전적 금압, 그리고 진흥/융성이라는 모순된 정책은 ‘코드’에 맞는 문화예술에만 금전적 지원을 함으로써 이뤄진 선별/배제의 과정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박소현, 「박근혜 정부 문화융성정책의 실체와 문제점」

이 글은 블랙리스트의 텅빈 기호이자 허무한 짝패인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 정책의 본질을 다룬다. 필자가 보기에 문화융성이란 개념은 “법정기구인 인수위원회의 활동 결과에는 없었던 돌연변이 용어이자 개념이고, 대통령 취임사에서 다분히 즉흥적으로 출현한 조어였다.” 문화융성은 박근혜와 비선실세가 만들어낸 유신의 문화정치를 연상케 하는 언어로서, 통치자의 “정책적 결정”을 압축한 말이다. 공무원들은 이 정책적 결정이란 통치자의 명령을 빌미로 자신들의 반문화적 행정 결정을 정당화하려는 관료적 태도를 드러낸 것이 문화융성정책의 핵심적인 문제점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필자는 “문화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문화행정 조직의 쇄신은 국민을 애초부터 배제하고 있는 ‘정책적 결정’의 관행과 그로부터 만들어지는 문화정책 영역에서의 블랙박스를 없애는 데에서 시작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원재, 「블랙리스트 예술검열에 저항하는 예술운동의 실천과 전망」

이 글은 블랙리스트와 탄핵 국면에서 예술가들이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제안한다. ‘광화문 캠핑촌’이 조성된 다음 날,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의 새로운 이름으로 ‘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를 제안한 것도 박근혜 퇴진과 비선실세와 문화 부역자의 처벌을 넘어서 “좀 더 급진적이고 지속적인 예술행동을 제안”하기 위함이다.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 예술행동은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예술검열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전면화 했고, ‘광화문 캠핑촌’ 활동은 “공유지(commons)로서의 예술행동”을 둘러싼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었으며, 정치를 둘러싼 새로운 상상력과 관계성을 만들어 냈고, 연대의 가치를 확장하였다. 필자는 블랙리스트 사태를 계기로 예술행동이 좀 더 급진적이게 되려면, “공유지로서의 예술운동을 확장하기 위한 더 많은 상상력과 토론”, “다양한 주체들 사이의 협력을 통해 예술운동 네트워크 구축 및 커뮤니티의 활성화”, “현장 예술운동의 사회적 가치를 확대하고 지속하기 위해서는 지역문화, 생활예술, 문화교육 영역과의 소통과 협력”, “다양한 사회운동과 연대할 수 있는 예술운동의 흐름 생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획: ‘광장의 정치와 시민혁명’>

김성일,  「광장정치의 동학: 6월항쟁에서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까지」

이 글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분출된 촛불집회의 성격과 의미를 기존의 사회운동과 연계시켜 살펴보고 있다. 그는 “1987년 6월 항쟁은 추도와 애도를 넘어 촛불집회라는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를 실험하는 시원(始原)이며, 대중의 광장정치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반대를 외치는 다중의 촛불집회를 거쳐, 2016년에는 박근혜 탄핵을 외치는 정동적 주체의 투쟁으로 이행”했다고 본다. 2008년 다중에게는 “존재의 새로움과 낙관적 전망이 투사되었다면, 2016년 촛불에게는 굴곡진 삶의 주름이 깊게 페인 존재의 고단함과 분노가 투영되었다”고 말한다. 대중의 유동적 잠재성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이 필요한 것이다.

 

이광일,  「그들이 대중을 다루는 아주 오래된 방식-촛불은 보수 자유주의 정치세력을 넘을 수 있을까」

이 글은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변혁을 외면하는 ‘수구-보수’ 주류 정치권력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가 보기에 광장의 촛불이 지향하고자 하는 것은 “기존 ‘수구-보수 독점의 정치질서’를 단순 전도시킨 ‘보수-수구 독점의 정치질서’로의 교체”가 아닌 “정권교체를 넘어 ‘더 많은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새로운 정치질서를 추동”하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더불어민주당으로 대변되는 “보수 자유주의 야당은 그들의 역사적 지위와 역할에 대한 의문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던 1980년대 이후, 대중이 봉기했을 때, 마지막까지 그들과 함께 한 적이 없다.” 그 예시가 바로 문재인의 ‘더러운 잠’에 대한 끔찍한 언술과 안희정의 기만적인 ‘대연정’ 제안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광장의 촛불’이 ‘87년체제’와 ‘97년체제’를 넘을 수 있으려면, “‘촛불대중’의 정치적 상상력과 실천은 보수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수구 정치세력 사이의 진자운동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두찬,  「광장은 더 나은 사회를 상상한다-광화문 캠핑촌에서 살아가기」

이 글은 광화문 캠핑촌에서 예술가, 노동자들과 함께 노숙 농성한 100일 가까운 현장 체험을 담고 있다. 그의 체험기에서 광장은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 항상 흥으로 가득 차 있고, 하루하루가 바쁘게 돌아간다. 그는 “우리가 추운 겨울날 시린 손으로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이고 침낭 속에 들어가도 추위가 가시지 않은 날씨에 노숙을 감행하는 건 단순히 박근혜를 끌어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말한다. 캠핑촌 촌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가난하고 고통받는 노동자들을 위한 나라”, “사람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정부가 아니라 국민들이 서로를 돕는 혐오와 편 나눔이 없는 사회”, “죽어가면서도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남기는 사회가 아니라, 자살은 사회적 타살임을 인정하고 모든 불의한 죽음에 고통을 통감하는 사회”이다.

 

문화현실 분석 

김소영, 「주술적 근대와 미디어: 박정희라는 컬트, 박근혜라는 오컬트」

이 글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현 정치적 국면에서 1970년대 유신과 근대화의 시기에 박근혜 영애가 중심이 된 영상들을 통해 일종의 미디어 황홀경 속에서 형상화된 특별한 인물로서 박근혜를 분석한다. 군집한 대중들 속에서 스펙터클의 몰아경에 빠져있는 그녀의 시선과 응시, 비극의 주인공으로서 이후 정치계에 출현하면서 작동하는 연민과 공감의 정치에 대한 하이재킹, 누가 누구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지 불분명한 복화술과 코스프레가 결합된 복합적인 정체성을 통해 박근혜 현상의 주술적 기원을 되짚어 본다. 나아가 “박정희 딸, 박근혜는 아버지라는 정전의 팬톰”으로서 혹은 “유령”으로서 귀환하여 “이성 부재의 통치”라는 비상사태를 통해 수많은 폭력적 정책들을 문화융성과 창조경제라는 정동 정치로 부활시켜 내었음을 읽어낸다.

 

이론의 재구성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  「빵이 없으면 예술을 먹어라! 현대 예술과 파생 파시즘」

맥켄지 워크(McKenzie Wark)의 「디지털 출처와 파생상품으로서의 예술작품」

베를린에 기반을 둔 영화감독이자 미디어예술가인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의  글 「빵이 없으면 예술을 먹어라! 현대 예술과 파생 파시즘」과 미국 더뉴스쿨(The New School)의 미디어‧문화연구 교수인 맥켄지 워크(McKenzie Wark)의 「디지털 출처와 파생상품으로서의 예술작품」을 김상민 편집위원이 번역했다. 슈타이얼은 현대 예술이 글로벌 금융자본의 위험회피를 위한 대안적인 통화로 작동하는 상황과 이와 동시에 소진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시대 이후 속속 등장하고 있는 권위주의적 파생 파시즘 현상을 혹독하게 비판한다. 워크는 시각을 약간 달리하여 예술이 차라리 파생상품이라고 보면서 우리 시대에 예술은 희소성이 아니라 오히려 전자적 복제를 통해 새로운 종류의 가치를 발생시킨다는 점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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