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20호][칼럼] ’3시 STOP!’ 캠페인의 메시지 (손희정)

경향신문 칼럼

[청춘직설]‘3시 STOP!’ 캠페인의 메시지

손희정(문화평론가)

    2016년 10월24일 오후 2시38분. 여성 수천명이 아이슬란드의 거리로 뛰쳐나왔다. 남성에 비해 평균 14~18% 적은 임금을 받는 것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임금격차로 보자면 여성들은 매일 2시38분 이후부터는 공짜로 일하고 있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이어서 11월7일 오후 4시34분에는 프랑스 여성들이 손에서 일을 내려놓았다. 성별임금격차 15.5%를 기준으로 봤을 때, 여성들은 이날, 이 시간부터 연말까지 무급 노동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항변이었다. ‘이퀄 페이 데이(Equal Pay Day·동일임금의 날)’로 불리는 이 시위는 같은 해 11월10일 영국으로도 이어졌다. 이뿐 아니다. 호주의 한 대학 여성 모임은 ‘페미니스트 주간’을 맞아 임금격차분을 반영하여 남성에게는 컵케이크를 더 비싸게 파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런 소식들을 접하며 우리는 왜 거리로 뛰쳐나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국이야말로 성별임금격차 38%,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국가 아닌가? 그런데 며칠 전, 3월8일 여성의 날을 앞두고 한국 여성 노동계에서 조기 퇴근 시위 ‘3시 STOP!’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최 측에서는 집회와 행진을 예고했고, 거리에서 함께하지 못하는 여성들에게는 각자의 자리에서 ‘3시 알람 맞추기, 3시 되면 회의하다 멍 때리기, 괜히 탕비실 가기’ 등 태업으로 동참할 것을 제안할 예정이다.

한국에서 남녀 성별 간 노동의 질과 조건의 차는 심각하다. 원인에 대한 분석은 분분한데, 크게는 다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남녀 사이에 능력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대한민국의 유독 높은 임금격차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둘째는 명백하게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회학자 신광영은 한국 노동시장에서는 동일한 조건에서 여성 임금이 남성에 비해 30% 정도 낮게 나타나며, 이 가운데 50% 이상이 차별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고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의 입지가 강화되면서 직접적인 성차별은 많이 사라졌다고들 한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 노동은 남성 노동에 비해 보조적이고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여성 노동의 결과가 상대적으로 낮은 대가를 받으며, 인사고과 불이익 등 남성중심적인 노동 체계 안에서 발생하는 간접적인 차별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경력단절 등의 성별화된 문제는 전혀 시정되지 않았다.

한국의 노동정책은 이런 문제를 제대로 다루고 있지 못하다. 지금까지의 성인지적 노동정책은 ‘여성노동정책’으로 바로 치환되어 ‘여성’만을 대상으로 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박근혜 정부의 ‘일·가정 양립정책’이었다. 사적 영역인 ‘가정’과 공적 영역인 ‘일’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여성으로 하여금 둘 다를 책임지기를 사회적으로 요구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불안정한 여성 일자리를 양산하고, 여성을 ‘과로사 권하는 사회’로 내몰았다. 한 가지도 인간적으로 수행하기 힘든 사회에서의 일·가정 양립은 죽으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3시 STOP!’ 조기 퇴근 캠페인이 던지고자 하는 또 하나의 메시지가 여기에 있다. 노동시장에서의 남녀 차별은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의 입지를 남성의 입지로까지 끌어올린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이는 오히려 노동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의 드라마틱한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서야 가능해진다.

이제 노동에 대한 이해가 달라져야 한다. 매일 야근하고, 회식에 시달리며, 무한히 경쟁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일이라는 판타지는 깨져야 한다. 공과 사, 남성과 여성 등으로 나뉘어 있는 분리의 벽을 깨고 노동 성격 전반을 바꿔내야 ‘사람’이 살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이것의 핵심은 남녀 노동자 공히 적용되는 노동시간 단축이다. 대선 정국에서 공론화되기 시작한 ‘남성 육아 휴직’은 노동 시간 단축의 한 예다. 우리는 저출산 패러다임의 외부에서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사유해야 한다. 여성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결국, 노동자 보편의 삶의 질을 바꾸는 것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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