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6호][칼럼][유럽 배낭 여행기_3] 혼자 배낭여행을 한다는 것(김성일)

혼자 배낭여행을 한다는 것

-무한 자유와 외로움 사이에서-

 

김성일(문화/과학 편집위원)

 

내 생애 첫 배낭여행은 터키와 이탈리아를 묶어 35일 일정으로 다녀온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8학번인 나에게 배낭여행은 꼭 해보고 싶은 로망이 아니었다. 주지하듯, 해외여행 자율화 조치는 88올림픽을 계기로 시행되었고, 첫 번째 여행객은 산업화 시대의 역군인 아버지, 어머니 세대였다. 이후 해외여행문화가 대학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92학번 이후이다. 따라서 92, 93학번이 대학생 배낭여행의 1세대이다. 나는 졸업하는 순간까지 내 스스로 외국에 나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내 나라인 한국도 제대로 여행한 경험이 없었기에, 해외여행은 다른 사람의 일로 치부했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 2004년의 배낭여행은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 TOP 10에 들어갈 만큼의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배낭여행 베테랑들의 틈에 끼어 갖던 터키와 이탈리아 여행은 이후 배낭여행의 불꽃을 점화시킨 라이터가 되었다. 당시 여행이 마냥 즐겁고 재미있지는 않았다. 인천공항에서 항공권 체크인을 하고 출국심사를 받는 것부터 다시 귀국하기까지의 모든 일들은 생애 처음으로 겪는 것들이었기에, 언제나 긴장과 두려움을 동반했다. 급기야 동행과 다툰 후 이탈리아에서의 모든 일정은 혼자 진행해야 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이탈리아 밀라노로 비행기를 타고 온 후 로마행 기차를 타기 위해 중앙역에서 헤매던 그 때의 일은 지금도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그러나 터키에서 동행들에게 배운 배낭여행 기법을 이탈리아에 와서 바로 응용하게 된 경험은 혼자서도 충분히 여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그 자신감은 2008년 지역축제를 주제로 몇몇 지인과 유럽여행을 할 때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유럽배낭여행의 사전 훈련으로 떠난 2011ㆍ2012년의 일본배낭여행에서 정점에 다다랐다. 그 자신감으로 2012ㆍ2014년 여름방학을 이용해 각각 70여일의 장기 배낭여행을 갖다 왔다. 이 두 여행 역시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 TOP 10에 들 정도로 유익한 경험이었다. 이 두 여행은 혼자 다녀왔는데, 이유는 내 주변에 70여일의 기한으로 여행갈 처지에 있는 사람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장기 배낭여행은 절대 2명이 가서는 안 된다는 교훈 때문이다. 2004년 사이가 틀어진 지인과 지금도 연락을 끊고 지내온 상황은 여행 친구를 강박적으로 만들 필요가 없음을 각인시켰다.

문제는 나 홀로 여행이 낭만적이면서도 고달프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배낭여행은 내가 가고 싶은 곳을 중심으로 지구상에 하나뿐인 루트를 짠다는 점에서 매우 즐겁고 행복하다. 내 여행 스타일과 신체 리듬에 맞게 짠 일정표는 절대 자유의 징표이다. 대도시와 주요 관광지뿐 아니라 소도시의 아기자기한 골목길, 확 트인 호수를 힘차게 누비는 크루즈 여행, 울창한 숲길을 걷는 하이킹, 여행 일정을 빨리 끝내고 숙소로 와 즐기는 낮잠은 절대 자유의 참맛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여행의 모든 일정을 혼자 준비하고 뜻하지 않은 트러블 발생 시 혼자 처리해야 하는 부담은 매우 큰 짐이 아닐 수 없다. 나 홀로 여행의 최대 난제는 식사이다. 영어나 방문국 언어로 쓰인 메뉴판에서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을 시켜야 하는 고충, 왁자지껄한 식당에서 혼자 테이블에 앉아 먹어야 하는 어색함이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지속되는 것이다.

따라서 나 홀로 여행은 절대 자유와 외로움을 양 축으로 하는 외줄 위에서 줄타기를 하는 광대의 연행(演行)과 같다. 혼자 있음이 자유롭고 좋게 느껴지다가도 지독한 고독으로 대면해야 하는 우리네 인생사가 나 홀로 여행에 극적으로 응축되어 있다. 인생사의 달고 쓴 맛이 압축적으로 경험된다는 의미에서 나 홀로 여행은 여행자를 철학자나 구도자로 성숙시키는 훌륭한 관문이 된다. 행복한 여행이 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몸의 상태에 민감해지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오감의 긴장도가 최고치로 오르는 나 홀로 여행은 궁극적으로 ‘나’를 만나게 한다. 이때의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니 않은 있는 그대로의 나, 즉 한국에서 무엇을 했든 그 모든 것이 무력해진 상태에서 나를 보호할 건 오직 내 몸뚱이 밖에 없음을 깨닫게 한다. 그 몸뚱이로 그 낯선 곳도 무탈하게 다녀왔는데, 한국에서 못할 게 뭐가 있겠는가?

 

네덜란드 잔세스칸스 풍차마을

 

룩셈부르크 시내 협곡

 

벨기에 안트베르펜 노트르담 대성당 내 성화(‘플란다스의 개’에 나온 실제 성모상)

독일 하이델베르크 학생 감옥

독일 프랑크푸르트 ‘반세계화 Occupy 운동’ 텐트 농성장

독일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

폴란드 오슈비엠침 유태인 수용소

체코 프라하 존 레논 벽

오스트리아 빈 프로이트 박물관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모스타르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크로아티아 두브로부니크

 

스위스 융프라우요흐 하산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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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이 [뉴스레터6호][칼럼][유럽 배낭 여행기_3] 혼자 배낭여행을 한다는 것(김성일) 에 응답

  1. 구자현 님의 말:

    형 반가워요, 글과 사진 잘 보고 갑니다.
    기억나세요?